만드는 능력보다 알아보는 안목
몇 개월 전 뉴스레터에서 Sean Goedecke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에서의 취향에 관한 글을 읽었다. 그때는 좋은 엔지니어는 기술적 판단의 기준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로 읽었다. 그런데 요즘 AI를 더 많이 쓰면서 같은 글이 조금 다르게 읽힌다.
AI 시대에 중요한 것은 단순히 취향이 아니라 안목이라는 생각이 든다. 내가 직접 만들 수 있는지보다, 만들어진 결과물을 알아볼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.
예전에는 만드는 능력과 알아보는 능력이 어느 정도 붙어 있었다. 복잡한 코드를 만들 줄 모르면 복잡한 코드를 내 손에 쥐기 어려웠고, 글을 잘 쓰지 못하면 그럴듯한 글을 만들기도 어려웠다. 물론 남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었지만,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결과물이 갑자기 대량으로 생기지는 않았다. 능력 부족은 불편했지만, 동시에 작은 안전장치이기도 했다.
AI는 이 안전장치를 없애고 있다.
이제는 잘 모르는 영역에서도 꽤 그럴듯한 초안을 받을 수 있다. 익숙하지 않은 기술 스택의 코드도 나오고, 낯선 주제의 글도 나오고, 그럴듯한 기획안이나 전략 문서도 나온다. 예전 같으면 내가 직접 만들 수 없었을 결과물이 갑자기 내 앞에 놓인다.
검색을 통해 답을 찾던 시절에도 비슷한 문제는 있었다. 검색 결과에 나온 해결 방법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가져다 쓰면 나중에 문제가 생기곤 했다. 다만 검색은 대개 조각난 정보를 줬다. AI는 더 완성된 형태의 결과물을 준다. 그래서 더 편하지만, 동시에 더 쉽게 믿게 만든다.
문제는 그것이 정말 좋은 결과물인지 판단하는 능력은 자동으로 생기지 않는다는 점이다.
완전히 틀린 결과물은 오히려 쉽다. 실행해 보면 깨지고, 읽어보면 이상하고, 앞뒤가 맞지 않는다. 더 어려운 것은 대충 맞는 것 같은데 어딘가 부족한 결과물이다. 맥락은 맞는 듯하고, 표현도 자연스럽고, 구조도 그럴듯하지만 중요한 전제가 빠져 있거나, 리스크가 숨어 있거나, 지금 상황에는 맞지 않을 수 있다. 이런 결과물은 안목이 없으면 쉽게 통과된다.
그리고 책임은 결국 사람이 진다. AI가 이렇게 말했으니까 괜찮다고 할 수는 없다. 코드가 장애를 일으키면 그것을 배포한 사람이 책임져야 하고, 문서가 잘못된 의사결정을 만들면 그것을 채택한 사람이 책임져야 한다. AI는 결과물을 만들어줄 수 있지만, 그 결과물을 책임질 수 있는지는 여전히 사람의 문제다.
그래서 AI를 잘 쓰는 능력의 핵심은 프롬프트를 잘 쓰는 데만 있지 않은 것 같다. 좋은 질문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, 더 근본적인 병목은 좋은 답을 알아보는 능력이다. 좋은 답인지 알아보지 못하면 질문을 잘해도 한계가 있다. 오히려 더 그럴듯한 결과물을 더 빨리 받아들이게 될 수도 있다.
모두가 비슷한 AI를 쓰게 되면 이 차이는 더 커질 것이라고 생각한다. AI는 평균적인 실행력을 끌어올릴 것이다. 그러면 단순히 빨리 많이 만드는 것의 희소성은 줄어든다. 반대로 무엇이 좋은지 알고, 어디가 부족한지 보고, 어느 수준까지 밀어붙여야 하는지 아는 사람의 가치는 더 커질 수 있다.
AI는 만드는 능력을 빌려줄 수 있다. 하지만 좋은 것을 알아보는 안목까지 대신 빌려주지는 못한다.
물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. AI가 점점 더 똑똑해져서 인간보다 더 나은 판단을 하게 된다면, 결국 사람의 안목도 필요 없어지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.
나도 언젠가는 그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진 않는다. 다만 그 시점이 정말 단기간 안에 올진 잘 모르겠다. AI의 능력은 계속 좋아지고 있지만, 모든 맥락에서 결과물을 판단하고 책임질 수 있을 만큼 좋아지는 속도는 생각보다 느릴 수 있다. 초반에는 성능 향상이 크게 느껴지더라도, 시간이 갈수록 개선 폭이 작아지는 구간에 들어갈 수도 있다.
그리고 그 작은 차이가 오히려 중요해질 수 있다. AI가 실행 능력을 크게 레버리지 해주는 도구라면, 사람의 안목에서 생기는 작은 차이가 결과물에서는 훨씬 큰 차이로 증폭될 수 있기 때문이다.
어쩌면 앞으로의 격차는 생산량보다 안목에서 벌어질지도 모르겠다. AI에게 일을 많이 시키는 사람보다, AI가 만들어온 일을 제대로 알아보고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더 중요해지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다.
AI가 똑똑해질수록 사람은 덜 생각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, 더 높은 곳에서 생각해야 하는 것 같다. 만드는 능력보다 알아보는 안목이 중요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.